생활 속에서

내 생애 마지막 자동차...

방패연사랑 2010. 11. 2. 01:41

자동차가 우리 가족의 하나로 자리잡은 지 20여 년,

이젠 하루도 녀석 없이는 생활할 수 없게 되었다.

처음으로 르0을 입양할 당시 녀석은 세 살이었는데

어지간히 말썽을 부리고 골치를 썩이던 놈이었지만

어느 녀석이나 다 그런 것으로 알고 힘 든 줄 몰랐다.

 

5년 후, 운전을 배운 동서에게 연습용으로 넘겨 주고 

이번엔 비교적 어린 소0타란 놈을 맞이하였다.

녀석은 우리 가족을 위해 그럭저럭 큰 말썽이나 사고 없이

8년 동안이나 무려 20여만 키로를 열심히 달려 주었는데

직장을 접고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용도에 맞지 않아

다섯 살짜리 지금의 말썽꾸러기 녀석을 맞아 들였다.

 

짐도 실을 수 있는 다목적 자동차 산0모...

녀석의 나이 열 세살, 우리 가족이 된 지 8년이 되었다.

이제, 죽으나 사나 끝까지 함께 할 수 밖에 없음을 눈치챘는 지

돈 먹은 지 얼마 되었다고 염치도 없이 자꾸 아픈 곳을 들어 낸다.

가물에 논바닥처럼 갈라진 피부는 허연 껍질을 바람에 날리고

제 짝이 아닌 앞 주둥이는 이미 기울어 균형을 잃었다.

노안이 왔는지 촛점을 잃은 두 눈은 이미 누렇게 변해버렸고

내장마져 수명을 다했는지 여기저기서 아까운 피를 흘린다.

긴급출동 서비스를 더 이상 요청하기 미안할 정도로

잘 달리다가도 툭하면 아무 곳에서나 기절하기 일수고

한 곳을 수술하려면 전이된 암처럼 다른 장기가 손을 내민다.

 

이제, 큰 병원비 들어가기 전에 안락사 시켜줘야지... 하면서도

좀처럼 믿음이 가는 쓸만한 녀석을 입양하는 일이 쉽질 않다.

매일같이 중고차 사이트를 훑어 보지만 금새 짜증이 날 뿐...

그런 내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던 아내,

이제, 나이도 있고 아이들 시집 장가 갈 나이도 되었으니

남들 보기에도 그럴듯한 것으로 새 차를 사자고 하지만

실속도 없이 차만 번드르하면 뭐 하냐며 고집을 부렸다.

 

며칠 전,

"이젠 마지막인데 아빠도 새 차 한번 몰아 봐야지..."

"뭐? 마지막이라고???....... "

그 마지막이라는 말에 왜 그리 마음이 쎄~ 하던지...

그러나, 내 나이 쉰 아홉, 어쩌면 그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.

언젠가, 차를 견인 보내고 온 날,

딸내미 시집 가기 전에 차라도 바꿔야겠다는 내 말에

아내가 살짝 귀뜸을 해주었었다.

우리 딸내미, 저 시집갈 준비는 벌써 다 해 놓았고

지금은 아빠 똥차 바꿔 주겠다며 적금을 붓고 있다고...

속으로야 대견하고 예쁘지만 겉으론 고마운 척도 할 수 없다.

"넌 네 걱정이나 해, 아빠 차는 아빠가 알아서 할 테니..."

 

도대체,

아빠가 뭐가 모자라 평생 중고차 인생으로 사느냐는...

그 날 밤, 딸내미의 안타까움 가득한 넉두리가

아직 호구지책으로 일해야 하는 나이 든 가장의 푸석한 가슴에 

따뜻한 솜털이 되어 포근히 쌓여 내렸다.

 

벌써 11월,  

50대의 마지막 가을이 내 나이 만큼 깊었다.